1937년에 중국에서 일본이 난징대학살을 일으켰지요. 그로부터 2년 후, 세계적으로 신경 안 쓸수 없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유럽 지역에 위치한 독일의 수장 히틀러가 같은 유럽 국가인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2차 대전이 벌어집니다. 아직 미국은 멀리서 이 흘러가는 상황들을 염려의 눈으로 계속 주시만 하고 있었지요. 유럽 전역이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물며 아시아 지역은 일본군이 중국까지 공격을 하여 서로 전쟁 중이니 신경이 쓰이지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졌던 전투부터 슬슬 규모가 커졌던 중국과 일본의 전쟁 중,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 뉴스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요. 이 행동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미국은 비공식적, 공식적 둘 다 ..
상하이 지역 전투로 예상하지 못했던 막심한 피해를 받은 일본은 중국에 대한 복수를 갈망하면서 상하이 지역 바로 옆에 위치한 난징 수도로 진격합니다. 장제스 중화민국 총재는 일본 군대가 난징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난징을 버리고 수도의 위치를 난징보다 더 내륙 쪽인 중경으로 급히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일본군 때문에 수도인 난징을 버린 셈이지요. 탕성즈 국민당 장군에게 마지막 난징 사수의 임무를 맡긴 뒤 떠났습니다. 이 상황에 난징에 거주 중이던 시민들은 동요합니다. 피난을 갈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집과 재산이 모두 난징에 있어 쉽사리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존재했지요. 마침내, 일본 군대가 난징까지 밀고 들어옵니다. 그 장군은 난징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요? 1937.12.10 일본 군대가 공격..
그 당시 전쟁이 벌어졌던 계기되었던 실종 사건에는 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실종되었던 일본 군사는 중국 군대의 총기 위협과 납치로 인한 것이 아니고, 그저 훈련 받는 도중 용변이 급해 잠깐 자리를 비웠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하여튼 일본 군인 행방불명 사건은 중국과의 전쟁을 시작할 명분이 필요한 일본에게 아주 반가운 기회였지요. 정확하게 무슨 사건이 발생했는지도 알 수 없던 사건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서로 약 8년을 치고 받는 전쟁을 벌인 것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쟁에 대한 명분이 생긴 일본은 중국 대륙을 향해 침공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 밀듯이 들어간 일본 군대는 베이징까지 손 쉽게 점령합니다. 그다음 중국 수도를 접수하기 위해서 남하를 시작합니다. 이 당시의 중화민국의 수도는 베이징이 ..
일본 정부는 마침내 내부 군부의 강격파 세력 주도로 인해서 만주 지역을 공격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내부를 손 보는 것이 아닌 타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돌파구로 결정 내렸습니다. 곧이어 주변 국가를 탐색했고 첫 번째 타겟으로 만주 지역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은 청나라가 무너지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던 국공내전으로 피바다가 된 상태였습니다. 이 틈을 노려서 일본은 중국 본진과 멀리 떨어져 위치하고 있는 만주 지역을 공격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유는 일본이 공격을 시작해도 중국 본진에서 만주로 대응하기는 빠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931.09.18 중국 지역의 심양(봉천)에서부터 일본 군대는 중국 만주 지역을 공격하고 쉽게 손에 넣습니다. ..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5년이 지난 1910년입니다. 이제 대한제국은 완전한 일본 식민지가 되었지요. 이렇게 치욕을 당한 년도가 1910 경술년이기 때문에 경술국치라고 부르지요. 다르게는 한일합방 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절대 이 표현은 써서는 안됩니다. 이 것은 일본 측에서 대한제국을 강제로 빼앗은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었던 표현입니다. 대한제국을 일본은 식민지화했고 정한론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의 이론이 본격 실현되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당시의 일본 내부 상황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급격하게 경제의 성장을 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작용도 하나 둘 나타나고 있었죠. 10년 후인 1920년에 일본 주식이 크게 붕괴하게 되면서 많은 일본의 투자자들이 폭망하는 사건이 발생..
미국은 여기서 한단계 더 욕심을 부립니다. 1905.07.29 미국의 육군 장관인 월리엄 태프트를 몰래 일본의 도쿄지역으로 보냈습니다. 당시 일본의 총리였었던 가쓰라 다로와의 밀약을 체결합니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라고 불리는데요. 밀약에서 맺은 내용은 이전에 논의한 것들보다 더 악질스럽습니다. 미국이 그 당시에 필리핀 지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 것을 일본이 미국을 인정한다. 미국도 그 대신에 일본이 한반도를 독차지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화가나는 밀약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했는데 러일전쟁을 이 대통령이 중재해줬다는 이유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됩니다. 어이없게도 대한제국을 일본의 손에 쥐어준 것으로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이죠. 영국도 이러한 식민지 땅..
결국에 러시아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합니다. 러시아의 최고 함대라 불리는 발트 함대를 일본쪽 바다에 주둔시킵니다. 발트 해의 경우, 핀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을 포함하고 있고 일본 기준으로 굉장히 멀리 위치해 있는 바다이죠. 발트해부터 러시아 함대는 일본으로 출발했습니다. 움직였던 항로를 살펴보면, 처음 1904.10 발트해로부터 시작해서 대서양을 거쳐 남쪽 이동 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을 찍습니다. 그 뒤, 인도양을 거치고 동남아시아를 지나고 대만까지 거쳐서 총 7개월의 여정 끝에 겨우겨우 일본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무리 무적의 함대로 꼽히는 러시아라고 하지만 이 7개월의 여정이라면 벌써 도착과 동시에 지친 상태죠.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대한해협으로 이동하는 중 가장 복병은 전복이었습니..
국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붙은 것을 피할 수 없다나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제부터 슬슬 러일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첫째로, 동아시아에서 러시아가 날아다니는 것을 탐탁치않게 생각하던 영국과의 영일동맹을 1902년 맺어요. 그리고 육군의 몸집도 120만명의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립니다. 여기에서 미국까지 끼어들게 됩니다. 일본에게 막대한 금액의 군사금도 지원하고 군사적인 지원도 직접적으로 했지요. 미국조차도 아시아에서 러시아가 활개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죠. 1904.02.08, 일본이 러시아를 선제공격 합니다. 이미 청일전쟁때 보여준 것처럼 일본은 이러한 기습을 좋아했습니다. 그 때, 동아시아 대륙에 주둔하던 러시아 군대는 총 10만 명에 불과..
이렇게 급변하는 국제적인 정세에 큰 관심을 기울인 한 여자가 있었어요. 바로 조선의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민씨)였죠. 민씨 왕비가 돌아가는 정세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천하의 나라인 중국을 무찌른 일본이 러시아에게 협박을 받고 옴짝달짝 못하는 상황이니 당연하게도 아시아의 패왕인 러시아라고 판단했습니다. 판단을 내린 뒤, 왕비와 왕은 러시아쪽으로 슬그머니 접근을 시도합니다. 통째로 조선을 먹어버리려는 일본을 막아서기 위함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접근을 일본쪽에서 눈치를 못 챘을 수 없었지요. 일본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앞써 라오둥 반도까지 다시 뺐겼는데 조선 영향권까지 러시아에게 빼앗길까봐 걱정을 합니다. 그 후, 일본 수뇌부는 이 모든 상황을 조선의 민씨가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아주 몹쓸 ..
당연히 배상금의 경우 보상해야하는 항목이며 이외에도 요동 반도와 대만 등의 중국 땅덩어리를 떼어서 일본에 내주는 내용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에도 중요했던 조항 중 하나인 - 청나라는 조선을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하겠다- 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주독립국으로 인정을 받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뜻은 이제부터는 중국은 조선에 간섭하지말라는 뜻과 이제부터는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겠다는 뜻이였죠. 아시아의 호랑이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으며 조선이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바로 그 사건이었습니다. 요시다 쇼인이 주장했던 정한론이 이루어진 것이죠. 하지만 청일전쟁 상황을 눈독 들이던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동아시아 구역을 지켜보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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