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처럼 미국에게도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수 차례 고민 끝에 불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가능하도록 만들어보자고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미군 폭격기 중 비교적 가벼운 B-25 기체를 이용하여 달려있는 기관총, 무전기 등을 제거하여 최대한 무게를 줄였습니다. 그 다음 육지 상에서 항공모함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활주로 길이를 본 따 만들어서 수 많은 이륙과 착륙을 연습했습니다. 이런 수 많은 시행착오와 훈련 끝에 이 불가능한 일을 성공으로 이끌어 내게 됩니다. 실제 항공모함에서도 이 착륙을 성공했지요. 그 다음 본격적인 도쿄 공습을 James Doolitle 중령이 준비하게 됩니다. 항공모함 상에서 이륙은 매끄러웠지만 아직 착륙은 100%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
일본의 기습으로 인해 미국 내부는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프랭클린 미국의 대통령은 진주만 기습 다음날에 의회에서 연설을 발표합니다. 이 발표는 치욕의 날 연설이라고 불리며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일본과의 전쟁 시작 승인을 요청했지요. 루스벨트가 발표했고 미 의회는 이 요청을 바로 허락하였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태평양에서 하게 되지요. 그 유명한 태평양 전쟁의 시작 단계입니다. 여기서 일본이 미국에 대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쟁에 참여하게 될 상대 미국 군인 청년들의 얕보았지요. 당시 돈이 넘쳐 나는 미국의 청년들은 매일 유흥을 즐기며 파티만 열어 놀기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본토의 청년들은 거듭된 전쟁으로 애국심이 넘치는 군인들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정예 부대가 주둔해 있는 진주만 지역을 침공하여 틈을 노리면 미국은 크게 놀랄 것이고 당황한 미국은 곧이어 협상을 준비해 일본이 요구 하는 사항들을 곧이곧대로 다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본이 진주만 지역을 공격할 당시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일본은 공격하기 20분 전에 선전포고를 날리려고 했습니다. 일본이 기대한 효과는 짧은 시간을 주어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했긴 했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는 명분이었죠. 그렇지만 여러 기술적인 오류로 인해 공격을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소식이 도착하고 맙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문서는 미국 정부에게 늦게 전달이 된 것입니다. 앞서 몇 번을 말씀드렸지만 일본은 선제 공격을 좋아했기..
날뛰는 일본을 잠재우려 미국이 석유 공급을 끊어 일본에서 비상 회의가 열렸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의 일본의 총리는 "고노에 후미마로"라는 남자인데 미국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협상파 였습니다.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짓은 자살이라는 것을 짐작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고노에는 미국과 협상을 적극적으로 시도합니다. 일본의 총리인 사람이 협상을 위해 직접 미국의 영토인 알래스카로 가겠다고 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총리의 협상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1941.09.18 일본 강경파 측에서 총리를 암살 시도 했던 것이죠. 일본 총리라는 사람이 너무 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강경파가 총리를 공격했고 겨우 목숨만 붙은 총리는 자진 퇴진합니다. 그 다음으로 초 강경파인 육군 대장을 했었던 "도조 히데키"라는 인물..
미국의 정부는 이런 내부 상황에 있어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고민 끝에 일본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도 일본 쪽을 압박할 방법을 찾아냈지요. 1941.08.02 미국은 일본에게 석유를 더 이상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많은 양의 석유를 미국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게 공급하고 있던 석유 공급을 멈춰버렸습니다. 석유는 일본에게 상당한 곳에 쓰이고 있었죠. 전투기가 띄우는 데에도, 탱크를 움직일 때도 석유는 빠질 수가 없지요. 일본이 석유가 충분치 못해지면 전쟁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이런 결단에 일본은 적잖이 당황하였고 해결책을 찾아봅니다. 일본의 왕이 도쿄에 긴급으로 어전 회의를 열고 논의에 논의를 계속할 정도였습니다. 회의를 끝내고 일본은 ..
1937년에 중국에서 일본이 난징대학살을 일으켰지요. 그로부터 2년 후, 세계적으로 신경 안 쓸수 없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유럽 지역에 위치한 독일의 수장 히틀러가 같은 유럽 국가인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2차 대전이 벌어집니다. 아직 미국은 멀리서 이 흘러가는 상황들을 염려의 눈으로 계속 주시만 하고 있었지요. 유럽 전역이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물며 아시아 지역은 일본군이 중국까지 공격을 하여 서로 전쟁 중이니 신경이 쓰이지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졌던 전투부터 슬슬 규모가 커졌던 중국과 일본의 전쟁 중,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 뉴스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요. 이 행동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미국은 비공식적, 공식적 둘 다 ..
상하이 지역 전투로 예상하지 못했던 막심한 피해를 받은 일본은 중국에 대한 복수를 갈망하면서 상하이 지역 바로 옆에 위치한 난징 수도로 진격합니다. 장제스 중화민국 총재는 일본 군대가 난징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난징을 버리고 수도의 위치를 난징보다 더 내륙 쪽인 중경으로 급히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일본군 때문에 수도인 난징을 버린 셈이지요. 탕성즈 국민당 장군에게 마지막 난징 사수의 임무를 맡긴 뒤 떠났습니다. 이 상황에 난징에 거주 중이던 시민들은 동요합니다. 피난을 갈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집과 재산이 모두 난징에 있어 쉽사리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존재했지요. 마침내, 일본 군대가 난징까지 밀고 들어옵니다. 그 장군은 난징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요? 1937.12.10 일본 군대가 공격..
그 당시 전쟁이 벌어졌던 계기되었던 실종 사건에는 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실종되었던 일본 군사는 중국 군대의 총기 위협과 납치로 인한 것이 아니고, 그저 훈련 받는 도중 용변이 급해 잠깐 자리를 비웠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하여튼 일본 군인 행방불명 사건은 중국과의 전쟁을 시작할 명분이 필요한 일본에게 아주 반가운 기회였지요. 정확하게 무슨 사건이 발생했는지도 알 수 없던 사건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서로 약 8년을 치고 받는 전쟁을 벌인 것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쟁에 대한 명분이 생긴 일본은 중국 대륙을 향해 침공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 밀듯이 들어간 일본 군대는 베이징까지 손 쉽게 점령합니다. 그다음 중국 수도를 접수하기 위해서 남하를 시작합니다. 이 당시의 중화민국의 수도는 베이징이 ..
일본 정부는 마침내 내부 군부의 강격파 세력 주도로 인해서 만주 지역을 공격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내부를 손 보는 것이 아닌 타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돌파구로 결정 내렸습니다. 곧이어 주변 국가를 탐색했고 첫 번째 타겟으로 만주 지역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은 청나라가 무너지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던 국공내전으로 피바다가 된 상태였습니다. 이 틈을 노려서 일본은 중국 본진과 멀리 떨어져 위치하고 있는 만주 지역을 공격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유는 일본이 공격을 시작해도 중국 본진에서 만주로 대응하기는 빠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931.09.18 중국 지역의 심양(봉천)에서부터 일본 군대는 중국 만주 지역을 공격하고 쉽게 손에 넣습니다. ..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5년이 지난 1910년입니다. 이제 대한제국은 완전한 일본 식민지가 되었지요. 이렇게 치욕을 당한 년도가 1910 경술년이기 때문에 경술국치라고 부르지요. 다르게는 한일합방 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절대 이 표현은 써서는 안됩니다. 이 것은 일본 측에서 대한제국을 강제로 빼앗은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었던 표현입니다. 대한제국을 일본은 식민지화했고 정한론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의 이론이 본격 실현되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당시의 일본 내부 상황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급격하게 경제의 성장을 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작용도 하나 둘 나타나고 있었죠. 10년 후인 1920년에 일본 주식이 크게 붕괴하게 되면서 많은 일본의 투자자들이 폭망하는 사건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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